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이 목사님! 안녕하세요. 혹시 교제하시는 목회자 중에 신실한 목사가 있으면 천거해 주세요. 저희 교회가 새로운 리더십을 찾고 있습니다."

가끔 후임 목회자 소개를 부탁받는다. 농촌 목회를 하는 내게 이런 부탁을 해 오는 교회는 대부분 작은 교회들이다. 성도가 많지 않아 교회 운영이 어려운 교회들이다. 농어촌 교회 아니면 도회지 개척 교회….

그런데 이번은 조금 다르다. 중대형의 큰 교회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서울 근교에서 300 여 명의 출석 교인이 은혜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이다. 목회자라면 가고 싶어 하는 교회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그 교회를 개척해서 이 정도까지 부흥시킨 목회자라면 욕심을 부릴 만도 하다. 세태가 왜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아들이나 사위 등 혈족들에게 교회 물려주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지 않은가.

이른바 세습이란 비판이 일자 온갖 방법으로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제사장 직을 세습하는 것은 구약의 전통이라는 둥, 내가 일으킨 교회 아들에게 물려주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둥 오히려 당당하다.

중대형 목사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이 똘똘 뭉쳐 공동 대처를 할 움직임이다. 유유상종이어서 마치 카르텔을 형성하기라도 할 기세다. 잘못도 집단화하면 죄의식이 감쇄된다고 하지 않나. 죄의 분산 효과라고나 할까.

이런 교계 풍토에서 이 목사님이 신실한 후임 목사를 소개해 달라는 말은 아주 신선하게 다가온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시골 목회자에게 후임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퍽이나 어색하다. 숨은 뜻이 있을 것이다.

둘째는 이것보다 그 의미하는 바가 더 크다. 그의 은혜로운 은퇴로 인해서다. 예배당의 크기와 성도의 수로 목회자들의 성공 여부를 평가한다. 대부분이 그렇다. 이 기준에 의하면 시골 목회자인 나는 성공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목회자일 수밖에 없다.

목회 여정 40년이 넘는다면 주위에 다양한 목회자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나에게 부탁을 하는 걸까. 여러 가지 각도에서 생각을 해 봤다. 그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 떠올랐다. 예수 중심의 삶!

그는 모든 사람을 예수의 마음으로 대하고 다가간다. 강자를 도외시하지 않되 약자에게 더 자주 눈을 주는 목회자이다. 억지 사랑이 아닌 물 흐르듯 자연스런 섬김으로 사랑을 실천한다. 섬김 받기를 좋아하는 풍토에서 즐겁게 섬기는 일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둘째, 은혜로운 은퇴라고 했다. 이 목사님은 5년을 앞당겨 조기 은퇴를 한다. 70을 채우는 데에도 달과 심지어는 날짜까지 따지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조기 은퇴는 어려운 결단이라고 말들을 한다.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다.

조기 은퇴보다 더 큰 감동은 후임자 선정에 있다. 예외 없이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할 때인데 그는 다르다. 혈연뿐 아니라 지연과 학연의 관계도 없는 사람들 중에서 후임자를 찾고 있다. 그도 목사 사위가 있고, 또 처남도 목회자이다.

작은 목회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이 일군 교회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이건 하나님의 뜻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회에서 후임자 선정으로 홍역을 치르는 것을 흔치 않게 본다. 선임자와 후임자의 간극이 교회 갈등으로 비화된다. 편이 나뉘어 세상 사람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자지간에 다투는 경우도 있다. 욕심의 결과다.

이 목사님은 은퇴 후 고향에 내려가 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병약하신 노모를 모시고 살 아담한 집도 한 채 장만했다. 30년 넘게 피와 땀 그리고 기도를 쏟아 부은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후임자와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 같다.

이 목사님의 후임자 추천 부탁에 나는 기도하며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정말이다. 이런 목회자를 이으려면 좋은 목회자여야 한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는 목회자,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와 같은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발행인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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