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교학사는 동아출판사와 함께 눈에 경이롭게 비치는 출판사였다. 국어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나는 국어 참고서만은 교학사 것을 꼭 구입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잘 모르겠다. 거대 출판사 동아에 비해 다소 적은 규모인지라 약자 사랑, 즉 긍휼의 마음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무슨 지조라도 되는 양 나는 교학사 참고서를 고집했다.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참고서 중에 교학사 것을 꼭 포함시켰다. 올 칼라로 제작된 참고서를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 겉표지를 싸서 조심스럽게 들쳐보곤 했다. 내용이 머리에 쏙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난 교학사에게서 심한 배신감 같은 것을 느꼈다. 박근혜 대통령의 힘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였다. 무한 권력은 부패할 뿐 아니라 세상을 어지럽게 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에까지 사적 권력을 유감없이 휘둘러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즈음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인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에 귀를 솔깃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의도 진리도 없고 민족은 아예 백안시하는 근대화론 주창자들은 박근혜의 그늘 아래 뉴라이트(Newright)라는 집단을 만들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고 있었다. 대통령과 친일어용 집단의 상생이었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버지 박정희는 부녀관계를 넘어 정치적으로 동질의 관계였다. 따라서 아버지의 정치를 극복하기는 커녕 박정희의 후광 아래 안주하려 했다. 당연히 유신독재가 비판 받는 것이 마뜩찮았다. 역사 국정 교과서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역사 서술을 권력으로 손보겠다고 선포했다. 호위무사들은 그 앞에 내시처럼 넙죽거렸다.

과거 방영된 TV 드라마 '추노'의 출연자 얼굴에 노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교학사 출판 수험서에 실었다. 사진 = www.topstarnews.net

봉건왕정 때나 있을 법한 일을 획책한 것이다. 아니, 욍조 시대에도 이건 금물이었다. 역사 편찬에 관계하는 사람(史官)들을 임금이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빈번하게 일어난 사화(史禍)는 이런 문제와 얽혀 있었다. 그런데 대명천지 21세기에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려 했으니... .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국민 절대 다수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했다.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사와 교수들도 90% 이상이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자 대부분의 출판사들도 책 발간을 포기 또는 고사했다. 오직 한 곳 교학사만이 국정교과서를 편찬하겠다고 나섰다.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이건 차라리 만용이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몇몇 사립학교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려 했지만 여론에 밀려 포기해야 했다. 수 십 억의 국민 혈세만 낭비한 채 박근혜 탄핵과 함께 국정교과서 파동은 막을 내렸다. 정권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책임 지는 사람 없이... . 그런데 또 사회에 시비를 거는 일을 저질렀다. 교학사가.

친일 국정교과서를 찍어 내겠다는 유일의 출판사가 교학사였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과연 그 교활함의 끝은 어디인가. 정권의 구미에 맞는 교과서 출판으로 국정농단에 일조한 교학사가 이번엔 고 노무현 대통령을 폄훼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 출판사에서 찍어낸 국사 수험서에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비하하는 합성 사진을 실은 것이다.

문제의 사진은 교학사가 2018년에 출판한 ‘한국사 능력검정시험’ 교재의 한 쪽에 실려 있다. 2010년 방영된 바 있는 KBS 드라마 ‘추노’의 한 출연자 얼굴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로 합성해 놓은 것이다. 극우 커뮤니티 일베의 것을 인용한 것인데, 이건 정신 줄을 놓은 행위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직원의 단순한 실수'라고 변명하지만, 참고 문헌에 버젓이 일베 사이트 주소를 넣고 있는 것을 볼 때 '단순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교학사 측은 직원의 단순 실수라는 변명을 내놓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사람은 많지 않다. 교학사의 전과(前過)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던 국정 교과서 출판을 맡겠다고 당당히 나설 정도의 배짱이면 이런 것보다 훨씬 더 한 짓을 하고도 남지 않겠나.

단순 실수라는 변명은 소낙비 피하기 위해 처마 밑에 잠시 피하는 수작과도 같다. 이 출판사는 출판의 목적인 지식 전달뿐 아니라 정의와 진리 그리고 인류 평화와 공영의 추구로 사회를 밝고 맑게 만드는 것에서 멀리 비켜 있다. 출판의 의무를 팽개치고 있는 것이다.

일베의 악행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하고 있는 현장에서 폭식 투쟁을 하고,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의 관을 ‘택배배달-착불’로 표현하는 사진을 버젓이 게재하기도 했다. 또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광고를 과자 포장지에 싣는 패륜적 행위도 거리낌없이 해댔다.

교학사 측에서 직원의 단순 실수라며 시중 책을 전량 수거하고 노무현재단 측에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이렇게 한다고 도덕적 패륜이 감해지는 게 아니다. 역사를 오도하기를 일삼고 출판계의 물을 흐려 놓음으로써 국민들의 정신을 흩뜨리고 있는 교학사는 영구 퇴출시키는 강력한 제재가 따라야 할 것이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강조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는 뜻이다. 중용을 강조하면서 제자 자공(子貢)에게 한 말이다. 교학사의 지나침이 어떤 오기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차라리 조용히 사라지는 게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교학사는 정신 줄 놓는 짓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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