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정윤영 선생 페이스북에서

오늘은 청소당번. 교실청소를 모두 마치고 선생님께 검사를 받고는 책보를 허리에 동여매고 골마루를 나와 신발장을 보니 내 신발이 없다. 비가 쏟아지는 운동장도 샅샅이 뒤지고 화장실도 맨발로 돌아다니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큰일 났다. 

새로 산 지 삼 일밖에 안 됐고 더구나 새로 나온 타이야표 꺼먹고무신인데... .집에서 알면 맞아 죽는다. 어떤 놈이 훔쳐간 게 틀림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십 리 길을 비를 흠뻑 맞으며 맨발로 걸어서 집에 오니 마루에 엄마 아버지가 앉아 계신다. 신발 잃어버린 거 들통 나면 난리가 날 건데... .

안되겠다. 뒤꼍 울타리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 거적을 살며시 들어 올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책보를 펴서 젖은 책을 부뚜막에 널어놓고는 가마솥을 소리 나지 않게 살짝 열어 보니 감자알이 들어있는 보리밥 한 사발이 반겨준다. 살강 속의 된장을 꺼내 부뚜막에 걸터앉아 맛있게 먹고는 웃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신발 찾아오라고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쫓아오는 엄마를 피해 아무리 뛰어도 달아나지질 않는다. 엄마 손에 붙잡혀 매를 맞으며 잘못 했어유, 한 번만 용서해 줘유!... 하고 소리를 치는데... .

"얘, 얘, 왜 그랴?" 누나가 흔들어 깨운다. 휴~, 꿈이구나. 

그래, 꼭 찾아야지. 어떤 놈인지 꼭 붙잡고 말텨. 밖을 나와 몇 번을 때우고 또 꿰맨 노랑 고무신을 찾아 신고 부엌에 들어가니 책은 다 말려서 책보에 잘 싸 놓았다. 누나가 그랬을 거다. 아직은 어둑어둑한데... . 안개가 살포시 내려 있고 윗집의 장닭이 꼬끼오~ 새벽을 알린다. 

그래, 지금 가야지. 일찍 학교 정문에 서서 지켜야지. 새 신발이니 찾을 수 있을 거야.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잃어버린 고무신을 찾으려면 참고 가야지. 

고무신을 바짓가랭이에 넣고 둘둘 말아 머리에 동여매고 책보는 두 손으로 번쩍 머리 위로 올리고 개울물에 들어서니 가슴까지 물이 차오른다. 평소엔 허벅지까지 차는데 어제 내린 비로 물이 제법 불어 뻘건 흙탕물에 겁이 좀 난다. 

물살이 쎄니 딛고 선 발밑의 모래가 패여 나가 자꾸 넘어지려 한다.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조심조심 중간쯤 건넜을 때 자꾸 떠 내려만 가니 너무나 무섭다. 으앙~, 소릴 지르며 울었다. 그리곤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스므레 소리가 들린다. 울움소리도 같고... . 뭔 일일까, 눈을 떴다. 사람들이 많이 서 있다. 엄마도 아버지도... . 나를 보더니 와락 끌어안으며 엄마가 우신다. 동네 아줌마들도 아버지도 우신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에구, 부끄러. 알몸이다. 동네 기집애들도 다 있는데... .

아랫집 아저씨가 새벽 일하러 들에 가다 울움 소리에 달려와 떠내려가는 나를 건져내니 잔뜩 물을 먹고 숨도 못 쉬는 내 배를 눌러 물을 빼고 입으로 숨을 불어 넣어 겨우 살아났단다. 

매도 안 맞고 새로 나온 타이야표 꺼먹고무신 또 한 켤레 얻어 신고... . 떠내려 보낸 책보는 영영 못 찾아 형아가 쓰던 틀리는 헌책을 아무 소리도 못하고 
가지고 다녀야 했다.

정윤영  daum.net

정윤영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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