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정윤영 선생 페이스북에서

겨울방학이 되니 청주에  사는 고종사촌 여동생이 놀러 왔다. 말이 동생이지 나랑 동갑이고 생일만 나보다 늦다. 

오늘도 동생들과 함께 개울로 썰매를 타러 갔다. 넓은 개울물은 추위에 꽁꽁 얼어 얼음판이 되었다. 다른 애들도 많이 나와 썰매도 타고 팽이도 치며 모두가 신나서 야단들이다. 

얼굴도 하얗고 옷도 이쁘게 입은 고종사촌 여동생이 얼음판으로 내손을 잡고 들어가니 한두 살 더 먹은 형아들이 우르르 달려와 썰매를 서로 태워준다. 

한참을 신나게 놀고 나니 발도 시리고 손도 시려와 동네 또래들과 개울가 잔디밭에 불을 놓고 쪼이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얼음이 깨져 사람이 빠졌다고 소리를 친다. 

달려가 보니 고종사촌 여동생과 또 한 머슴아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이쁜 여자애를 썰매에 태우니 신이 난 머슴아가 뽐내려고 여울진 얼음판으로 달려가다가 얼음이 얇아 깨져 빠지고 말았다. 

물은 가슴까지 차오르는 깊지 않은 곳이지만 얼음 위로 올라오려고 얼음을 짚고 힘을 주면 깨져 버리고 또 그러면 또 깨지고... . 얼마를 그러고 있으니 둘은 꽁꽁 얼어 추워 어쩔 줄을 모르고... .

모두가 다급해하다가 누군가가 칡넝쿨을 잘라다 던져서 간신히 끌어 올렸다. 
꽁꽁 언 두 사람을 데리고 불 놓은 곳으로 가 보니 아뿔싸 ~, 불이 번져 산으로 타오르고 있다. 

모두가 달려가 솔가지를 꺾어 불을 열심히 꺼려하나 불어대는 바람 따라 잘도 번져만 간다. 더구나 불타고 있는 이 산은 호랑이로 소문난 은자네 아버지 산이다. 다행히도 동네 어른들이 몰려나와 산 중턱까지 태우고는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우리 몇은 불을 놓은 죄 때문에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이다. 호랑이 은자 아버지가 그냥 넘어갈 리 없을 테니 이 일을 어쩌나... . 아마도 산불 냈다고 징역살이를 시킬지도 모를 꺼라는 형아들의 말에 더더욱 걱정이 된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개울에 불 낸 우리 넷만 가도 못 하고 발을 굴러대며 걱정만 해댄다. 얼마를 그러고 있다가 동네로 올라오는데 아랫고개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이는 순경 아저씨 같아 보인다. 

“아이구~, 벌써 신고해서 우릴 붙잡으러 오나 보다”라는 동기의 말에 우리 넷은 개울을 달려 산으로 도망을 쳐 댄다. 

산 하나를 넘고 깊은 산골짜기 양지바른 곳 나무더미 속에 몸을 숨겼다. 해가 설풋이 넘어갈 때까지 점심도 굶고 덜덜 떨며 숨어 있다가 이젠 순경도 찾다 지쳐서 돌아갔겠지 하고는 나와 서로 얼굴을 보니 얼굴엔 검댕이 칠로 얼룩이 지고 머리털은 불 끄느라 끄슬려서 엉망이고... . 그 꼬락서니들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춥기도 하고 배도 고파 살금살금 순경이 없나 살피며 동네로 들어서니 집에 들어오도록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몰래 부엌에 들어가 찐 고구마를 부뚜막에 걸터앉아 까먹고는 방에 들어가니 찬물에 빠져 콜록거리는 고종사촌 여동생이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고 물을 뿐 아무 일도 없다.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아무 일 없이 그냥 넘어갔다.

정윤영  daum.net

정윤영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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