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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과 동고동락하다 천국 간 민중 신학자 문동환이명재(본지 발행인, 철학박사)
발행인 | 승인 2019.03.12 13:29

좀 어려운 과정을 거쳐 문상을 했다. 문동환 목사님의 빈소가 차려진 곳은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어려운 과정이라고 소개했는데, 가는 길은 아래와 같은 이유다.

자동차 ⟶ 김천구미역 ⟶ KTX 승차 ⟶ 서울역 ⟶ 지하철 승차 ⟶ 신촌역 ⟶ 도보 ->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오랜만에 운동을 세게 한 셈이다. 신촌역에서 병원까지 걸어갔는데 등에 땀이 배였다.

밤 8시, 장례식장 지하 2층 특 201을 찾아갔다. 미로를 찾듯 이리저리 헤매다가 지하 2층 로비에 당도하니 이상욱 목사님이 로비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목사님은 신실한 동역자다.

조화와 조기가 열병식 하듯 죽 나열되어 있었다. 정치인들, 학교, 교회 이름이 박힌 것들이 많이 보였다. 고인의 삶을 대충 꿰맞출 수 있었을 같았다. 조화와 조기에 이력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했고 또 제1야당의 부총재까지 역임했다(정치계). 한신대 기독교 교육 담당 교수로 후학을 길러냈다(학교). 갈릴리교회 목사로 목회를 했다(교계). 갈릴리교회는 한빛교회와 같은 예배당을 사용했다. 시간만 달리해서… .

갈릴리교회 11명 멤버 중 유일한 생존자인 홍일중 선생은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문익환 문동환 공덕귀 이우정 이문영 서남동 안병무 현영학 이해동 허병섭 홍일중 등이 고정적으로 예배에 나오던 사람들이다.

만 98세, 우리 나이로는 99세이면 천수를 다 누리신 게 된다. 그럼에도 문 목사님의 타계가 슬픈 것은 그가 해 온 일들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와 사회는 변화를 요구하는데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교계다.

문 목사님이 그토록 희구하던 민주주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철 지난 색깔론을 무기로 민주주의를 훼방하는 극우세력이 아직도 건재하며 발호하고 있음을 본다. 지그재그를 거쳐 역사는 발전한다고 하지만 너무 더디다.

대학은 대학 대로 몸살을 겪었다. 사학 비리와 도덕 불감증이 만연했고, 정부에 반(反)하면 무조건 쫓겨나야 했다. 최근에는 강사법 제정으로 많은 강사들이 대학을 쫓겨나고 있다. 강사법이 강살법(講殺法)이 되고 말았다.

문 목사님은 민주화 운동에 연루되어 해직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지금은 다른 이유로 대학 강사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어렵게 박사를 취득한 사람들이 고등실업자로 전락하여 방황하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현실이 되고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사이즈로 판단하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은 교계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 되고 있다. 문 목사님이 시도한 크지 않지만 모두가 평등한 갈릴리교회 같은 것이 그리워진다.

교계와 한국 사회에 기여한 문 목사님의 활동에 비해 조문객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평소 조촐한 행사를 강조한 고인의 바람도 반영된 것 같다. 방명록에 '김천 이명재 목사(李明在 牧師)'라고 기록한 뒤 고인에게 흰 장미꽃을 바쳤다.

큰 아들과 먼저 손을 내밀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바로 이어 둘째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같은 예를 취했다. 문 목사님의 사모님(문혜림)은 서양인이다. 자녀들의 얼굴도 한국과 서양을 왔다갔다 했다. 신기하게 비쳐졌다.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여기저기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우원식 의원, 심상정 의원, 장영달 우송대 총장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옛 동지들은 오랜만에 봐도 늘 친근하다.

잠시 뒤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성재 힌신대 석좌교수, 문화 쪽을 대표해서 가수 전인권, 함석헌 선생의 제자로 알려진 홍일중 선생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김성재 교수는 문동환 목사님의 수제자로 이번 장례에 호상을 맡고 있었다.

이상욱 목사와 함께 식사를 했다. 스크린에서는 문동환 목사 일대기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가 부르는 아리랑 노래에서 애잔함이 흘러나왔다. 김약연 목사님이 지도한 간도에서의 독립운동과 삶은 문 목사님에게 큰 지침이 되었다.

문 목사님 형 문익환 목사님 등 문씨 가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 우연이 아니다. 목사님의 부친 문재린 목사님과 모친 김신묵 권사님은 우리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대부와도 같은 존재다.

그분들은 일제 압박에 저항하는 방법을 삶으로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독재 정권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엄중하게 증명해 보였다. 세속 사회에선 도저히 따를 수 없는... . 문 목사님의 천국 안식을 빈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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