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정윤영 선생 페이스북에서

당번들이 바께스에 뭘 들고 들어온다. 모두가 신기한 듯 둘러서서 말들이 많다. 나도 궁금해 가보니 샛노란 색깔의 뭔 죽이다. 밥 굶는 거지같은 애들에게 준다는 둥, 꿀꿀이죽이라는 둥,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며 어떻게 이걸 사람이 먹느냐는 둥... .

점심시간, 선생님이 몇 명 아이들을 부르는데 나도 끼여 있다. 다른 아이들은 왁자지껄 도시락을 먹는데 우리는 불려 나가 그 노란 죽을 한 컵씩 나눠 받았다. 그리곤 다른 친구들을 본다. 아, 저 눈초리. 

돼지죽을 먹는 놈들... . 저걸 정말 먹을까? 하는 호기심 찬 눈초리로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며 도저히 먹을 용기가 안 난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픈 이 심정. 내가 돼지가 되어야 하나? 내가 이걸 먹으면 정말 돼지지? 울컥 자존심이 상해 온다. 받아 든 노란 강냉이 죽을 책상에 놓고는 후다닥 뛰어나가니 선생님의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 들려온다. 

운동장 철봉대로 달려 나가 턱걸이를 몇 번 해 대며 그래, 절대 안 먹을텨~ . 난 돼지가 아니란 말여~ . 혼자 악을, 악을 써 댔다.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쪼르륵거리는 뱃속을 샘물 한 바가지로 채우면서 
그 노란 강냉이 죽을 먹지 않았다. 

삼일 째 되던 날. 점심시간이 되자 또 밖으로 나가려는 날 부르는 선생님. 직접 강냉이 죽 한 컵을 떠서 손에 들려주며 암말도 말고 먹으란다. 

그래도 안 먹겠다 고집을 부리니 내 귀퉁배기를 한 대 내갈리며 빨리 이 자리서 먹으라 다구친다. 화난 선생님이 무서워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억지로 한 컵을 다 먹었다. 

동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내 뒤퉁수가 너무나 뜨겁기만 했다. 
난 드디어 돼지가 되는구나. 아~, 부끄럽다. 창피했다. 그 강냉이 죽을 먹고는 배가 너무나 아파 왔다. 

그 이튿날도, 그 담날도 강냉이죽만 먹고 나면 늘 배가 아팠다.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배 아픔도 없어지고 배도 불러 참 좋았다.

정윤영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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