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1980년대 초로 기억된다. 당시 재야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함석헌 선생 댁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댁은 서울 원효로 2가 산비탈에 위치해 있었다. 모시적삼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함 선생의 모습이 떠오르는 걸로 봐서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친구와 둘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왔다.

무슨 대화 끝인 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런 말을 내가 꺼냈다. 우리나라는 사람의 잘못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 같다. 국민성 운운하며 확신의 마음으로 함 선생에게 동의를 구하려 했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잘못에 대해 후한 게 전혀 아니라고 했다.

인재 싹 자르기를 즐기는 나라였다며 약간 불만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함 선생은 조선시대 당쟁을 예로 들었다. 사색당파로 대변되는 싸움은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의 싹을 자르는 일종의 게임이었다는 것이다. 민족성으로까지 일반화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나의 흐름이었다고 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40 여 년 전 함석헌 선생과 나눈 대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 건 왜일까. 손혜원이라는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온 사회가 벌떼처럼 수선을 떠는 모습에서 싹 자르기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심성을 보았다면 잘못일까. 일제 식민사관의 소지자라고 욕할까.

지역 사랑과 문화재 보존의 마음을 투기로 만드는 데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이 짝짜꿍이 되어 흥미 거리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회가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중죄인으로 만들기도 한다.이럴 때 공직자의 이해 충돌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취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도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건 손혜원이 그런 '쪼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법상에 다소 서투른 면이 없지 않았다 해도 그의 행위는 그곳에 투기를 하고, 그곳 땅값을 올려 부당 이득을 취하기 위해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이해충돌방지법, 공직자들이 잘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마치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 선풍처럼 잘못 사용될 경우 국가 발전에 큰 해악으로 작용할 수가 있다. 꼼꼼히 따지면 여기에서 자유로울 공직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의 원 취지는 “공직자가 직무상 권한을 이용해 자신이나 가족이 인허가, 계약, 채용 등의 과정에서 이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부동산을 소유한 공직자가 그 물건지의 개발 정보를 직무를 이용해서 사전 취득해 이득을 보는 것 등도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된다.

손혜원의 목포 구도심 부동산 매입을 그런 범주에 넣어서 보고 싶지 않다. 우리 지역 출신 국회의원 송언석도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된다고 해서 말들이 많다. 송언석은 나와 사회를 보는 눈엔 차이가 있지만 나는 그의 입법 활동을 그런 차원에서 보지 않는다.

과연 송 의원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김천역 앞 4층짜리 건물을 보고 김천역이 낀 구도심 개발을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막 정치를 시작한 사람을 그런 좁은 시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이건 송언석의 본심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앙 일간지에 이런 송언석 이해충돌 사실이 처음 기사화된 것 같다. 제보에 의한 기사 작성 같은데 제보자나 이것을 받아 쓴 기자나 유치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번 일로 송언석이 새겨야 할 것은 다른 데 있다. 젊은 초선 의원에 이론과 실물 경제에 밝은 사람이 섣부르게 정쟁의 가운데 서지 말라는 것이다.

그 정도의 실력 소지자라면 정파를 위해서보다도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해서 능력 발휘할 곳이 많다. 한부모 가정 지원금 60억 삭감, 손혜원의 목포 구도심 활성화를 '손혜원 게이트'로 명명하고 맹폭을 가한 것,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론을 논리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비난성 공격으로 흐른 것 등은 정치 초년생의 서투른 행보이다.

송언석은 건전한 보수를 기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이런 서투르고 모난 행보가 그에게 태클을 걸게 하는 요인이었다고 하면 잘못된 판단일까. 자업자득(自業自得), 즉 스스로 싹 잘릴 짓을 했다고 표현하면 서운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송언석이 국회의원 연임을 생각한다면 처신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이 글의 주제가 '인재 싹 자르기'다. 요즘 인터넷 실검 순위에 랭크되고 있는 사람이 JTBC 손석희 사장이다. 한 프리랜스 기자로부터 폭행죄로 고소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법원에서 판결해주겠지만 이 소식을 접하는 이들은 씁쓸함을 금하길 없다. 믿었던 한 언론인이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언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손석희가 고소의 당사자다. 우리 언론사(言論史)에서 손석희는 특별한 존재다. 그만큼 자기 길을 흐트러짐 없이 걸어 온 사람이 드물다. 그가 삼성계열 언론사인 JTBC에 스카웃 되어 갈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괜찮은 한 언론인의 훼절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석희는 그런 우려를 보란 듯이 극복해 냈다. 종편 JTBC를 공영‧민영 지상파 방송보다 공신력 있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때 한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도 높아져갔다. 우리 언론사에 보기 드문 인재로 평가된다.

손석희도 완전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프리랜서 기자로 인해 촉발된 사건의 엉성함에는 한마디 덧붙여야 하겠다. 우선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의도성을 가진 공갈 협박이 이 사건의 본질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일로 인해 손석희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JTBC 근처 한 일식집에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갔다는 녹취록을 들어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프리랜서 기자는 구타를 인정하라고 큰 소리 쳤고, 손석희는 그를 무마시키려 애를 썼다. 사건을 만들려는 의도성을 앞에 언급했지만 두 사람 간의 대화를 몰래 녹취한 것부터 건전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프리랜서는 바로 3주 상해 진단서를 떼어서 인근 파출소로 가서 신고했다고 한다. 손석희가 정신 차리라며 툭툭 건드렸다고 하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상해 3주 진단이 나올 수가 없다. 병원이 어떻게 이런 진단서를 발급했는지 사실을 경찰과 검찰은 엄격하게 조사해야 할 것이다.

어떤 배경이 있는지 모르겠다. 허나 한 유명 언론인 싹을 자르려는 방식으론 유아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본인이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가벼운 차량 접촉 사고를 낸 뒤에 손석희를 찾아와 아무 것도 아닌 일도 선배님이 관계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며 무마하는 조건으로 취업 청탁을 했다는 프리랜서라면 폭행죄를 꾸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가자. 우리는 구한말의 위난지국(危難之國)을 거쳐 일제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사색당파 당쟁으로 물고 뜯기는 와중에 새싹을 잘라버린 현상들이 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일제는 그것을  당파성론으로 변용해 식민 통치에 이용했다. 아직도 그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정치는 국민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정치(正治)가 되어야 한다. 허나 그렇지 못하다. 타협할 줄 모르는 정당들, 물 타기 작전, 코미디의 소재로 족할 5시간 반 단식, 정파 이기주의... . 국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정치 작태들이다. 국민은 정치 발전을 바라는데, 우리의 정치는 뒷걸음만 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발행인  lmj2284@hanmail.net

<저작권자 ©김천일보 김천i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