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연의 김천 문화유산 답사 – 김천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④의병장 왕산(旺山) 허위(許蔿)

의병장으로 항일전을 선두 지휘한 충신忠臣 왕산旺山 허위許蔿 의사

(왕산 허위 1854.04.01.~1908.10.21.)

"우리 이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盡忠竭力 용맹과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굴욕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고관 중에 제일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대한 침략의 괴수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단한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께서 선생을 평評하신 말씀)

본관은 김해이며, 청추원 허조(許祚)의 네 형제(훈薰,신藎,겸兼,위蔿) 중 막내아들로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김천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김산의진(金山蟻陣) 참모장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아호는 왕산이다.

선생은 1895년(고종 32년) 명성왕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그 치욕을 참지 못하고 김산(김천)의 여중룡(呂中龍)과 동지 이기찬 등 인근의 지사들과 협의하여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1892년 2월 10일 김천 장날을 기해 김천읍내로 들어가서 수백 명의 장정을 모집하고 항일의병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그들은 김산 무기고를 습격해 점령하고 무장을 갖춘 뒤 김천과 성주 두 곳에서 진을 쳐놓고 대구로 진격을 하였다. 김산의진은 공주와 대구에서 출동한 관군과의 접전에서 곤경에 빠지자, 피신했다. 다시 영ㆍ호남에 격문을 보내 유생들을 모아 김천 및 성주의 지사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 해 3월 16일 김천에서 수백 명의 의병으로 부대를 편성하여 왕산이 참모장을 맡았다. 농소면 노곡리, 부항면 대아리 홍심동, 대항면 직지사 등지에서 일본군과 대전을 치루었다. 패전도 있었으나 의병을 거느리고 북상을 계속하여 충북 진천까지 진격을 하였다.

※ 선생이 부항면에서 군사훈련에 주력할 때 흥선 대원군의 친척인 대야리 거주 이용직(工曹判書 역임)이란 분이 수천 량의 군자금을 지원했다.

(월탄月灘 박종화朴種和 선생이 지은 추모시)

그러나 이즈음 의병 해산을 명하는 고종의 밀지를 받고 군대를 해산한 후 학문에 전념하며 나날을 보냈다. 이 후 선생은 1904년 평리원(平理院) 서리재판장(현재 대법원장 서리)에 있으면서 불의와 권세에 타협하지 않았다. 의정부참찬(正二品)에 임명되었을 때는 학교건립(첫째,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기를 것. 그 재주가 우수한 자를 골라서 외국에 유학 시킬 것), 철도 및 전기 증설, 노비 해방, 은행 설치 등 10조목의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호남 3월 달에 오얏꽃 날리니
나라에 보답하려는 서생 갑옷 벗내
산새도 어떻게 시사時事 급함을 알고
밤새도록 나를 불러 불여귀不如歸를 외우네"
(의병을 해산하라는 왕명에 어쩔 수 없이 장졸들을 타일러 각각 돌려보내고 감회로 읊은 시詩)

(러일전쟁 관련사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일본을 반대하는 정우회를 조직하여 일제 침략상을 규탄했다. 전 국민이 의병의 대열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활동 등으로 1905년 3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4개월 구금되었다. 강제 귀향조치 후에는 김천 삼도봉 아래 부항면에 은거하던 중 같은 해 11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경기도 등을 다니며 의병을 일으킬 준비를 하였다.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느니 보다 온갖 힘을 다하고 마음을 합하여 빨리 계책을 세우자. 진군하여 이기면 원수를 보복하고 국토를 지키며, 불행히 죽으면 같이 죽자(...) 비밀히 도내 각 동지들에게 빨리 통고하여 옷을 찢어 깃발을 만들고, 호미와 갈고리를 부셔 칼을 만들고(...) 의군을 규합하여 순리에 쫓게 되니 하늘이 도울 것이다."(전 국민 의병을 촉구하는 일부 내용)

(13도창의군 사진)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이 강제 퇴위당했다. 군대가 해산되자 경기도 연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천, 적성, 파주 등지를 무대로 병력을 증강하여 48개 전국 의병부대 1만 여명이 규합하여 연합의병부대와 통합사령부를 창설했다. 그 뒤 13도창의대진소(군사장 허위, 전라도 문태수, 경상도 신돌석, 함경도 전봉준 外)를 성립 시키고 적성(赤城) 동남쪽에 있는 감악산에 의병 훈련장을 만들었다. 동대문 밖 30 리 지점인 수택리까지 깊숙이 진공도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한강의 선박운행 일체금지 등 의병의 진출로를 차단했다. 동대문에 기관총을 설치하는 등 기동력과 화력이 일본군에 비해 현저한 열세로 말미암아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각지의 의병부대가 하나로 뭉쳐 서울 외곽까지 진공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서울 진공작전 뒤, 의병부대들은 일본군의 진지를 기습하고 전선을 절단하여 통신을 마비시켰다. 뿐만 아니라 관공서를 습격하기도 하고 매국노를 처단하는 등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때 총리대신 이완용은 선생께 사람을 보내 관찰사나 내부대신의 직책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러나 왕산 선생은 완강히 거절하고 도리어 그 사람을 준엄하게 꾸짖어 돌려보냈다. 선생은 투항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일제와 투쟁할 것을 천명하였다.

전투 시에는 항상 군율을 엄격히 하여 민폐가 없도록 했으며, 군사물자를 조달할 때는 군표軍票를 발행하여 뒷날 보상해 줄 것을 약속하면서 결사 항전하였다.

(1908년 10월 3일 대심원 판결문)

(선생께서 순국하신 서대문 형무소)

1908년 6월 11일 경기도 양평군 유동골짜기에서 은신처를 탐지한 일본군 헌병대에 체포되었고, 같은 해 10월 21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향년 55세 나이로 안타깝게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교수형을 언도받고 남긴 유서)

"국치민욕 내지어차 불사하위
부장미성 국권미복 불충불효 사하명목
國恥民辱乃至於此不死何爲
父葬未成國權未復不忠不孝死何暝目"
"국치와 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하랴
아버지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나라의 국권도 회복하지 못하였고 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몸이니 죽은들 어이 눈을 감으랴."

선생의 의기와 기품은 다음과 같은 일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짐작된다.

형의 집행에 앞서 왜승(倭僧)이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외우려 하자, 선생은 "충의의 귀신은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요, 혹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어찌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서 복을 얻으랴"라고 대성일갈(大聲一喝)하여 물리쳤다.

또 한 검사가 선생에게 사후 시신을 거둘 이가 있느냐고 묻자, "죽은 뒤의 염시를 어찌 괘념하겠느냐, 이 옥중에서 썩어도 무방하니 속히 형을 집행하라"고 하였다.

선생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큰아버지 허겸(許蒹)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항일에 몸을 바쳤다.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를 보면 허위 귄속들은 모두 국외로 이주하고 자손들은 불령(不逞-일본에 반하는) 운동에 종사하였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최고의 서훈인 1등급 대한민국장이다.)

(선생의 집안은 독립운동을 통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하였다. 선생의 셋째 형 성산(性山) 허겸은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부민단 초대단장으로 활동했다. 맏아들 허학(許壆)은 큰아버지 성산과 함께 만주에서 독립운동 중에 체포되어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맏형 방산 허훈은 중국 동북항일연군 총참모장으로 항일투쟁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