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박사(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철학박사)

인(仁)에서 찾은 공자의 희망

옛 성인들은 싸우고 죽이는 군웅이 할거(割據)하던 춘추전국시대 백성들의 고통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고자 했다. 공자도 이런 긴 고민 끝에 인(仁)이라는 글자로 그의 사상을 담아서 문제해결을 시도했다. 인(仁)이란 사랑, 어짊을 뜻한다. 공자는 사람과 사람을 단단하게 연결하고 하나로 되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이 문자에 세상을 향한 그의 소망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글자 인(仁)엔 어짊과 사랑이라는 뜻과 함께 씨앗이란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인(仁), 그것이 세상을 향한 씨앗과 같은 생명을 지닌 소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인(仁)자는 갑골문자인 사람 인(人)자와 두 이(二)자가 합쳐진 합성문자이다. 정확하게 언제 이 문자가 생성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문자가 주목받고 재해석된 것은 춘추전국시대라고 본다.

끊임없는 전쟁 가운데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며 공자와 같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간은 왜 저렇게 살육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잔혹한 전쟁터를 만들고 있는가?” “인간답게 사는 길은 없는가?” “어떻게 하면 상호공존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공자는 종교에서 답을 찾지 않았고 학문에서 답을 찾았다. 왜냐하면, 신정 국가시대의 종교는 군주에 의해 쉽게 오염되어 왔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가령 순장제도만 해도 그렇다. 군주나 왕은 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죽어서도 왕으로서 부귀 영생을 얻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자기가 죽어서도 종들이 자기와 함께 있고 섬김 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왕이 죽으면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의 사람이 함께 생매장되었다. 비록 예기(禮記)와 같은 곳에 제사에 관한 내용이 있을지라도 그의 의도는 생사람을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 의식이나 절차에 의미를 더 부각했다. 상징적인 예술로 승화하고자 했다. 그래서 음악과 같은 형식이 추가되고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공자가 보지 못한 인간의 본성

공자나 서양의 인문주의자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그 답이며 삶의 주인임을 밝히고자 했다. 사람의 본성에 뭔가 답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공자도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면서 이와 같은 이유로 인(仁)이라는 글자를 다시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Homo homini lupus)”라는 본성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기원전 2세기 로마의 최고 극작가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의 연극작품 아시나리아(Asinaria)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후 로마에서는 격언처럼 사용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아직 만나보지 않은, 다른 인간에 대해 마치 늑대처럼 영역다툼, 잔인함, 비인도적인 습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홉스(Thomas Hobbes)는 “시민공동체 내에서라면 사람은 서로 돕는 존재지만, 도시국가 간에는 서로 싸우고 전쟁을 벌인다”고 했다. 인간 본성을 어떻게 보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인간이란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타인에게 늑대와 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법은 인간의 죄악 때문에 필요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모두가 선한 마음으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다면 법 대부분을 없애도 될 것이다.

효제(孝弟)로 가능한가?

공자는 인(仁)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효제(孝弟)라 하였다.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도리, 본성은 무엇일까? 공자는 이런 질문에서 인간 본성 안에 담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가족관계에서 형제 사랑, 즉 효제(孝弟)를 제시했다. 효제(孝弟[孝悌])는 고대 유학 경전에서 부모에 대한 친애의 감정[孝]과 형제간의 공경심[弟]을 의미한 용어다. 이것은 유가(儒家)에서 이해한 인간의 선천적 정감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감의 도덕적 원리를 의미하며,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확장됨으로써 혈연적 가족 너머의 타인과 관계 맺게 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관계의 원리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충서(忠恕)를 제시하였다. 충(忠)은 가운데를 뜻하는 중 (中)과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결합한 글자이다. 내 마음의 한 가운데(中+心)라는 것은 나의 참된 마음, 나의 양심을 의미한다. 우리가 우리의 참된 마음, 양심에 충실할 때에 진실할 수 있다. 여기에서 참된 마음, 중심은 곧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말한다. 그래서 충은 조금의 속임이나 꾸밈이 없이 자신의 온 정성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서(恕)는 같음을 뜻하는 여(如)와 마음을 뜻하는 심(心)이 결합한 글자이다. 즉 내 마음과 같은 것을 뜻한다. 즉,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서(恕)는 나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고 배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마음을 바탕으로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세우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면 먼저 남을 이루게 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공자는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본성에서 인간의 선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주인으로서 자아의식을 찾은 것이다. 이를 좀 더 확장하면 인간 사회적으로 효(孝)는 수직관계를, 제(弟)는 수평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수직 문화와 수평 문화의 조화와 중용을 이룰 때 평화롭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이 될 것을 확신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신의 길과 인간의 길이 서로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는 부패하고 타락한 정부만 보았을 뿐이다. 부패한 인간의 본성을 보지 못했다. 그는 법이나 교육으로 군웅할거 시대를 종식할 수 있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서양의 인문주의자들과 같이 종교로 다스리는 정부에서 인간이 다스리는 정부로서의 변화를 원했다. 그는 신이 만든 법 대신에 인간이 만든 법으로 대체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는 신의 길인 용서와 인간의 길인 회개, 돌아섬의 길은 대체할 수 없고 서로 공존해야 할 길임을 제시하였다.

인(仁)에 담아야 할 두 사랑

언어의 생성을 보자면 말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엔 그것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문자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문자 기능의 기본이 된다. 효제(孝弟)의 의미가 먼저 있고 그것을 근거로 인(仁)의 글자와 사상이 먼저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실천하는 방법인 효제 (孝弟)를 인 (仁)이라는 글자에 담은 것이다.

그러면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인(仁)이라고 하는 이 문자에 담겨야 할 두 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仁)이라는 글자에 두 개의 본성과 두 개의 길, 두 개의 사랑을 담는 지혜가 요청되다. 사람 인(人), 두 이(二), 사람에게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본성이 있다. 사람에게 두 개의 길, 즉 신의 길과 인간의 길이다. 신의 길은 용서이요, 인간의 길은 돌아섬, 회개이다. 인(仁)은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두 개의 방안이 있는데, 그것은 두 개의 사랑 계명이다.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

성경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 이중(二重)사랑 계명이야말로 선지자요 율법의 완성이자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된다고 말씀한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하나님의 법' 또는 '그리스도의 법'이라 했다. 하나님 사랑이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권위를 받아들이는 길이요 이웃 사랑이란 이웃은 탈취의 대상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길이다. 공자는 신의 길, 용서의 길,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仁)이라는 글자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중사랑 계명을 담는다면 인간에게 더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구조물이 되고 근본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인(仁)자에 하나님을 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970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1973년 『수용소 군도』를 발표한 솔제니친은 1983년도 템플턴상 수상식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왜 러시아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6천만 명이 넘는 인명이 학살당하는 끔찍한 재난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솔제니친은 신학자도 목회자도 아니었다. 그는 사상가요 문학가였다. 그런데도 그가 시대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안목과 능력이 남달랐던 것은 바로 남들에게 없는 한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었다. 솔제니친은 어린 시절에 러시아 공산혁명을 직접 경험한 자였다. 자신이 사랑했던 삼촌, 이웃, 그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인사들이 끌려가서 처형되는 장면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온 나라가 공포 분위기에서 아수라장이 되어 가는 그 모습 앞에 그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처참하게 처형당하던 그 어른들이 남긴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왜 이 땅에 이토록 처참한 비극이 찾아 왔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20세기 소련 땅에서 시작된 이 비극은 21세기를 사는 이 땅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동일하다.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단절되는 곳에는 하나님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땅에는 절망과 탄식과 비극만이 일어날 뿐이다.

이상욱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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