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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隨想)] - 식칼論 재론 : 예기치 않은 식칼을 선물로 받고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발행인 | 승인 2019.01.12 12:12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제목이 좀 무시무시하지요? 하지만 저의 일상사에 있을 수 있는 작은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하며 지내게 됩니다. 그 중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사람과는 선물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삶을 살아왔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전하는 선물은 고마움과 정성의 표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종종 기쁘게 주고받습니다. 선물의 종류를 보면 먹는 것(음식류)과 입는 것(의류) 그리고 보는 것(서적류)이 대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고액이 아니어서 부담이 없습니다. 주는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의외의 선물을 하나 택배로 받았습니다. 서울에 사는 후배가 보내온 것입니다. 그는 한때 나와 함께 사회운동을 했던 여자 후배입니다. 동생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더욱이 같은 생각과 뜻을 품고 있는 동지여서 가깝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갖고 있는 생각과 하는 행동에서 저와 합치점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특별하게 보이는 후배입니다. 직장에서 만난 남성과 결혼을 했고 세 아이를 두었으며 여전히 한 직장을 30년 가까이 다니고 있습니다.

세류에 휩쓸려 살기를 거부하며 바른 길을 걸으려고 애쓴 흔적이 삶 곳곳에서 보입니다. 큰 아이를 제도 교육에 묶어 두지 않고 스스로 능력과 자질을 계발토록 한 것이 한 예가 될 것입니다. 고1 때 학교를 자퇴하고 세상 보는 안목을 넓힌다며 미국 등 외국을 전전하게 하더군요.

이번에 그런 경험들을 살려 몇 개 대학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뽑는 과에 원서를 냈다고 합니다. 장래 제2의 반기문이 되는 꿈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한 미션 스쿨엔 목사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그것을 써주었습니다. 결과가 잘 나오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남편도 소시민적 삶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노동운동의 지도자로 지금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무노련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민노총의 브레인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종여일(始終如一)한 활동에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합니다.

화이트칼라, 즉 사무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장기간 변함없이 많은 블루칼라(육체 노동자들)와 함께 활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과 함께 주어진 일을 신명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이 덩달아 힘을 얻을 정도입니다.

노동운동도 부부의 뜻이 일치하지 않으면 오래 지속하게 어렵습니다. 이들 부부는 친구로, 직장 동료로, 운동의 동지로 무엇보다도 세 아이의 어버이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외의 눈으로 그들 부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선물 이야기를 하다가 갓길로 길게 빠진 것 같군요. 그 여자 후배가 보낸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용물 그대로는 접수가 안 된다고 해서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고 합니다. 타협책으로 내용물을 명기하지 않기로 하고 택배 사무실에서 접수를 받아주었다더군요.

실제로 그 선물을 택배로 받고 부착된 명세표를 보니 보내는 이의 주소와 받는 이의 주소는 전화번호와 함께 간단히 적혀 있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물 표기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배의 전화번호는 회사 일반 번호를 올려놓았습니다.

무슨 철학에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직도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영원히 갖지 않고 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기계문명의 유용성을 거부하는 21세기의 낭만주의자'란 긴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괘념치 않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보낸 선물은 '식칼'입니다. 식칼을 선물로 보내겠다는 말에 나는 크게 웃었습니다. 많고 많은 선물 중에 왜 하필 식칼이냐는 의문의 웃음이었습니다. 식칼과 선물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두 단어입니다. 괴팍스런 선물이라는 얘기가 되겠지요.

식칼은 언뜻 섬뜩한 기분에 젖게 만듭니다. 이것은 저의 부정적 사고관(思考觀)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식칼하면 나는 1970년대 의식 있는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던 조태일의 시 '식칼론'이 떠오릅니다. 같은 제목으로 대여섯 번 쓴 연이어 쓴 시로 알고 있습니다.

조 시인은 이 시에서 식칼을 민중들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공유하는 삶의 공통 수단으로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거든요. 이 식칼은 당시 철권을 휘두르던 군부독재 권력에 맞서 싸우는 도구의 상관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거기에만 그쳤으면 이 시의 격을 그렇게 높게 쳐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식칼을 사랑의 도구로 애용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필수적인 매개물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재화가 그렇듯이 문학도 다수에게 정신적 유익을 줄 때 그 의미가 더 크지 않습니까.

조 시인의 ‘식칼론’ 일부를 옮깁니다. 박제된 사회에 대한 반발이 시어로 잘 영글어 있습니다. 하지만 조목조목 성의껏 읽다보면 그 속에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어 새로움으로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모더니즘 시의 묘미가 이런 것 아니겠어요.

 

식칼論 1 /조태일

 

- 전략 -

흐르는 피 앞에서는 묵묵하고

숨겨진 영양 앞에서는 날쌔지요.

秘藏(비장)하는데 신경을 안 세워도 돼,

늘 본관의 심장 가까이 있고

늘 제군의 심장 가까이 있되

밝게만 밝게만 번뜩이면 돼요.

그의 적은

六法全書(육법전서)에 대부분 누워 있고....

아니오 아니오

유형무형의 전부요.

 

꼭 조태일의 연작시 '식칼論'이 아니더라도 저는 선물로 받은 이 식칼을 사랑을 나누는 도구로 사용할 생각입니다. 주위 노인 분들과 장애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봉사할 때 이 식칼을 사용하려 합니다. 교회를 찾는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과일을 깎을 때에도 이 칼들을 정성스럽게 쓸 것입니다.

살아있는 생물에게는 이 식칼 사용을 멀리할 것이며, 생명이 끊긴 식물(食物)을 재단하는 데에 이 식칼이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식칼이 무자비한 무기가 아니라 사랑을 창출하는 도구도 될 수 있겠지요? 조태일의 시에 응답하는 것도 될 것입니다.

후배는 이 식칼이 아주 고급이라고 했습니다. 정확한 명칭인지 모르겠으나 독일제 '헹켈'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도 세트를 나에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세계적 유명 상표에 매료되기보다는 보낸 사람의 사랑과 정성을 읽으려고 합니다.

모든 물건에는 정(正)과 부(否)의 가치가 상존합니다. 이것은 어떤 현상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저의 삶이 부보다는 정을 찾는 여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선물로 받은 식칼에서 그런 철학을 발견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게 여겨집니다.

* 이 글은 전에 한 인터넷신문에 올렸던 글인데, 약간 수정 보완하여 본 신문에 다시 게재하는 것임을 밝힙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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