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시사칼럼 - 미쓰백, DNA 그리고 성탄절

김병희(시사평론가)

얼마 전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문재인 정부는 민간사찰에 대한 DNA가 없다"는 말로 야당의 비판을 받았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이 언론을 통해 알리고 있는 현정부의 민간인 사찰의혹에 대한 해명을 하면서 해당 언급이 있었다.

문득 청와대의 대변인 브리핑자료를 어느 단계까지 결재를 받는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스스로 작성한 것을 읽는 것은 아닐 것이고, 임종석 비서실장이나 대통령께 보고를 하고 브리핑을 하는 것일 텐데, 어떻게 그런 문장이 들어가게 되었는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청와대 근무를 그만두고 싶다던 탁현민 행정관을 붙잡아 두려던 임종석 비서실장이 "첫 눈이 오면 놓아주겠다."고 했던 감상적인 만류의 표현이 연상되면서, 청와대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시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누구에게 불법을 행하는 DNA가 있고, 누구에게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는 선인이고 누구는 악인으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불법행위를 하면 재판을 해서 벌을 주고, 다시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런 것들이 시스템화 되어 반복되면서 사회가 점차 나아지는 것이다.

이런 절차를 위해서 사법개혁이니, 사법농단사태 수사니 하는 것들을 진행하는 것이다. 김태우 전 특감반원은 그런 민간사찰 DNA가 개인적으로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특감반원으로 앉힌 사람은 제대로 사람을 파악하는 DNA가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 그런 이분법적인 잣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한편, 최근 한지민이라는 배우가 "미쓰백"이라는 영화로 여러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휩쓸면서 화제가 되었다. 관객 수 70 여 만 명에 불과한, 상업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영화에 많은 영화제는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영화는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소재를 그 무게감에 걸맞게 다루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 학대받는 아동들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지고, 이 사회가 개선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의 길을 택하였다. 제작비를 회수하기도 힘든 주제로 위험을 감수한 감독과 투자자의 결심에 한지민, 이희준 등의 배우가 출연을 결심했고, 연말 시상식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

학대받고 성장한 불행한 한 여성이, 현재 학대받고 있는 한 어린 여자아이를, 자신의 불안정함과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구해낸다는 이야기이다. 반복적인 학대를 통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던 그 아이의 친부는 "이런 환경에서 자랐는데, 걔 인생도 뭐 별 볼일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불행의 대물림을 당연시하는, 무책임한 그의 언급에 이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본질적인 냉소를 느꼈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잘 할 수 있다. 내가 도와줄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절실한 시대이다.

학대를 받은 아이의 DNA에 다시 학대를 하는 DNA가 대물림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나 아닌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다는 선한 희망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다.

나는 못 배웠지만 우리 아이들은 배워야하고, 나는 사랑받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더 많이 사랑 받아야 한다. 대가 없는 선한 사랑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성탄절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던 예수님조차도 그렇게 적이 많아서 죽임을 당하셨는데, 하물며 적당히 죄를 저지르며 사는 우리들이야 하루하루가 힘든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오늘 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많은 아이들과 함께, 오늘 밤만은 매 맞지 않기를 기도하는 많은 피학대아동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정치인,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이 넘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DNA, 첫 눈을 운운하며 감상적인 선민의식, 풍월을 읊조리는 선비의식에 빠질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가장 약하고, 안쓰러운 부분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을 때이다.

김병희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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