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로 한창 바쁠 12월 4일 토요일이었습니다. 청첩장 1장을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의 아들 결혼식을 알리는 청첩장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바쁜 토요일이지만 참석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새신랑의 아버지 되는 사람은 노숙자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 어머니는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도우며 생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쉽게 ‘때밀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의 두 아이는 이런 가정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주었습니다.

큰 아이의 결혼식이었습니다. 그는 의대를 나와 한 대학병원의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신부는 약사라고 했습니다. 그 가정의 내력을 사상(捨象)한다면 번듯한 양가의 잘 자란 젊은이들의 결혼식으로 생각하기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장 이야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습니다.

물론 신부 측 집안은 대단했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대학 나와 재벌회사 임원을 거쳐 그때도 유수한 외국기업의 한국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신부의 아버지가 결혼식의 주례를 마음 속으로 정하고 결혼 당사자들을 불러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로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랑이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아버님과는 친구 사이로 잘 아실 테지만 저는 일면식도 없는 분이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그것보다도 신랑이 마음에 두고 있는 존경하는 분이 혼례를 맡아 주례를 서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그에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분은 농촌에서 작은 교회를 맡아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목사님이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목발에 의지하며 겨우 거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례를 서고 싶지만 이런 상태로는 힘들겠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랑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목발에 의지해서라도 목사님이 주례를 서 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결혼식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노숙자 생활을 하던 신랑 아버지도 정장을 하니 말쑥한 신사로 변해 있었습니다. 결혼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도 모두 싱글벙글했습니다. 양가 친척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축하하는 자리, 전정 복된 결혼식장이었습니다.

목발에 의지한 채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사실 지금 주례를 설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두 사람이 찾아와서 하는 말에 더 이상 주례를 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말이 목사님의 마음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켰습니다.

“목사님, 의사인 저와 약사인 저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 저희들만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희들 일정 기간 열심히 직장을 다니다가 때가 되면 아프리카 오지로 가서 선교사로 일할 비전을 갖고 기도합니다. 목사님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물이 사람을 에워싸며 사람을 들기도 하고 놓기도 하는 세상, 그래서 그 재물로 인해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하는 세상에 가치를 다른 데 두고 미래를 설계하는 이 젊은이들의 생각은 아주 귀하게 다가옵니다. 단칸 사글세방에서 시작하는 이들의 신혼 생활이지만 그들에겐 행복이 떠나질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행사는 진정 참석해서 모두가 기뻐하는 결혼식이었습니다.

발행인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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