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시사평론가)

손학규는 정치적으로 운이 별로 없는 정치인이다.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손학규 징크스라는 말이 있다. 2006년 그가 100 일 동안 전국을 돌며 민심대장정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려고 한 날, 북한의 1차 핵실험 뉴스가 터지면서 이슈가 묻혀버렸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에는 한미FTA가 체결되었고, 2014년 정계은퇴 후 전남 강진 시골집에서 2년을 칩거하다 다시 돌아온 날 북한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가 국민의 당에 입당하는 날, 삼성 이재용이 구속되었다.  이밖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일일이 열거하기도 번거롭다.  

그는 늘 더 큰 이슈에 묻히면서, 그의 무게감에 걸맞는 정치적 결단을 국민에게 온전히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런 그가 며칠 전부터 단식을 시작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이다. 민주당은 손학규 징크스가 다시 발동하여 김정은의 방남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슈로 이슈를 덮어버리는 잔기술을 뒤로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질로 보자면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 정치지형을 바꿀 수 있는 큰 정치개혁 아젠다이다. 

이명박, 박근혜의 보수 정권 시절,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쪽은 오히려 민주당이다. 하지만 집권하고 나니 생각이 바뀐 걸까? 이해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슬그머니 피하고, 대통령은 손학규의 단식이 6일째 되는 날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야, "또 자기들 밥그릇 싸움하는구나." 하며 지겹다고 하겠지만, 정치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민주당에 큰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사안이다. 

특히, 고소득 전문직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소득세, 재산세 등 눈앞의 손해를 알면서도 민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런 것들을 감수하면서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장기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지형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정당이 집권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개혁의 하나가, 국민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는 선거제도인데 이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함축된다. 민주당은 스스로 야당일 때, 정치개혁 안건의 가장 우선순위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올려 놓았다가 지금은 이래저래 말을 바꾸고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 

이런 민주당의 모습에,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지했던 고소득 전문직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겠지만 결국 손학규의 단식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도 당리당략에 따라 단식을 하는 것일 테지만, 그 방향과 시점이 민주당의 표리부동과 이율배반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손학규의 단식은,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김영삼의 단식, 지방자치제를 위한 김대중의 단식 수준의 정치적 전환점을 지향할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한 단식의 주제도 적절하고, 민주당의 비겁함도 적시적이다. 손학규가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으나, 이해찬의 입장은 날이 갈수록 곤란해 질 것이다. 열흘이 넘어가면 문재인 대통령도 손석희도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 손학규는 노회한 정치 감각으로 시간이 본인의 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손학규가 오랜 징크스 끝에 고참 정치인으로 무게감에 걸맞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 선진국들의 정치체제에 비견되는 좋은 선거제도가 탄생되길 기원해 본다. 

한편 이 시점에, 같이 단식 중인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더불어 노회찬 의원이 문득 생각난다. 그라면, 현재 민주당의 표리부동을 국민들께 더 와 닿는 언어로 재치 있게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싶다. 

김병희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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