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환절기(換節期)입니다.

(바둑이가 새집에 들었답니다)

먼저 시(詩) 한편 보실까요?

    내가 사랑하는 계절 
                              詩/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제가 어릴 적에....말입니다.

영양실조에 걸렸는지 얼굴에는 마른버짐이 덕지덕지 피어 있고 가뭄에 마른 논 갈라지듯 손등은 쩍~쩍~ 갈라져 있었지요.
양말을 벗으면 까마귀가 친구하자고 덤비고, 콧물까지
찔찔 흘리던 그런 시절이었지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어느 날
대문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멀리서 개짓는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그런 날이었지요.

점심시간 무렵부터 엄마는 가마솥에다 물을 끓이셨지요. 가마솥이 있는 곳이라고 해봐야 본채 지붕에 덧대어 달아낸.... 
요런 것을 보통 까대기를 
달아냈다고 합니다. 
양옆은 막혀있고 앞쪽은 
툭 터져있는 그런 곳이지요.

몸을 헹굴 물은 미리 다른 양동이에다 담아놓고 차례대로 들어가는 기라요. 
형, 나, 동생 순으로.... 
뽀드득 뽀드득 거친 돌멩이로
이곳저곳 문지르면 아프기도 하거니와 손등이 터진 곳에서는 피까지 난다오.
그때는 그것이 엄청 싫었는데....

엄마의 손길로 등짝까지 씻고는 땟국물이 넘치는 가마솥에서 나옵니다. 미리 받아논 양동이의 물로 몸을 깨끗이 헹구고는 삼베수건인지 면수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몸을 구석구석 닦고 방으로 들어가면 목욕은 
끝이 나는 것이지요. 
목욕이란 게 끝나고 나면 
왜 그렇게도 개운했을까요?

마침 그날은 숯불 속에서 몸부림치던 고구마도 하나 얻어 걸렸는데,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알겠지요. 기분이 째진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요? 
좌우지간 좋았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즘도 나는 가마솥만 보면 군고구마 생각이 납니다. 
촌놈이라서 그렇겠지요? 

나이가 들어 60살을 넘어서니
가끔은 옛날 어릴 적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갈 때가 있답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나태주 시인의 말마따나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한 아버지의 콧노래와 어머니가 무쇠 솥에다  찌는 고구마의 따스함이 있는 
그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문홍연  daum.net

문홍연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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