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 무인들의 경거망동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철학박사)

고려 의종 때니까 1천 여 년 전의 일이다. 문신(文臣)에 비해 무신(武臣)들이 형편없이 홀대를 당할 때이다. 참다못한 무신들이 폭발해 문신들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했다. 정중부를 비롯해 무신들이 난을 일으켰다고 해서 무신의 난이라고 한다.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쿠데타다.

현대사에도 무신 난과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민간 정부의 타락과 무능함을 그대로 둘 수 없다며 군인들이 난을 일으켰다. 1961년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으킨 5.16 쿠데타가 그것이다. 고려 무인 정권 100년에 비하면 짧지만 5.16의 쿠데타 세력도 권력을 40년 동안 구가했다.

무인 오늘 날의 군인들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태평성대 때보다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이들의 존재 기반은 평화보다도 전쟁기의 혼란에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통일보다는 분리의 격동기에 싸이클이 맞는다고나 할까.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 많은 것이 변했다. 사회의 썩은 구석을 도려내려고 힘을 쏟는다. 부당하게 쌓은 기득권을 해체하는 것도 주요 정책 중 하나다. 군사문화의 불식도 예외가 못 된다.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사물을 피아(彼我)로 보는 데 익숙한 그들에겐 북이 통일의 대상이기보다 적으로 간주된다.

이런 사람들에겐 남북통일에 대한 노력이 나라를 김정은이에게 갖다 바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예비역 군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거엔 생각도 못한 일이다. 국가 반역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을 북한과 내통한 빨갱이로, 남북 정상회담을 국가 파괴의 범죄 행위로 낙인찍고 있다.

대단한 애국자라도 되는 양, 현 집권 세력을 한 줌도 안 되는 악의 세력으로 규정한다. '국민'을 들먹이고, '대부분의 예비역 장성' 운운하지만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 것이며 또 군 출신 예비역 장성들은 몇이나 될까. 그들의 외눈박이 행태가 역겹기까지 하다.

국민 다수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북한을 변화시켜 통일의 물꼬를 트게 만들기를 원한다. 평양 시내를 둘러보고 함경북도의 촌락에서 민족 동질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도 냉혹한 국제질서를 헤쳐 나가는 길은 남북의 통일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역 장성들이 취할 태도는 어때야 할까. 묵묵히 지켜보면서 평화적 통일의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며 반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더 우스운 것은 애국 충정의 상소문이라며 국민의 눈을 흐리게 하는 박모 예비역 중령, '사즉생(死卽生)'의 투쟁을 강조하며 이순신 장군까지 끌어들이는 신모 예비역 중장 모두 박근혜 정권 및 태극기부대에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뱉는 가시 돋힌 말들은 자신의 인격뿐 아니라 군 전체의 품격까지 형편없이 떨어뜨리고 만다.

신모 예비역 장성이 선동하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가 좋아하는 사즉생, 임전무퇴(臨戰無退)의 다짐에서 살벌한 결기를 읽을 수 있었다. 문재인 정권과의 투쟁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대들겠다는 것에서 살기를 느꼈다.

이런 자의 발호(跋扈)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정말 진정한 민주주의인가? 신모 씨는 지난 한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였다고 한다. 이런 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 쪽 눈만으로 사물을 보고 현상을 분석하며 정치를 했다면? 정말 아찔하다.

11월 21일 예비역 장성들이 모여 문재인 정권을 성토하는 자리를 마련한단다. 몇 명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고 그런 예비역들이 모일 것이다. 남북의 평화통일에 대한 노력과 정부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하며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이들을 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는 것이 나이든 사람의 도리다. 군사정권 하에서 만큼 그들의 활동 폭이 넓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능지처참(陵遲處斬) 당할 각오를 하고 상소문을 올린 박모 씨는 지금의 자신의 제반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것 같다.

그가 쓴 한 글에서 우리나라 군 간부 출신 예비역 10명 중 4명은 실업자라고 읍소했다. 미국은 제대 군인을 고용하는 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까지 주고 있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과거 군사정권 때는 위급 군 출신 전역자를 사무관으로 특채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또 지금의 고용 악화 사정이 꼭 문재인 정부만의 책임일까. 앞의 두 정권-이명박, 박근혜-은 경기 침체의 책임에서 과연 자유로울까. 감정에 기초해서 세상을 보는 것은 동물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성은 사람 고유의 능력이다.

1천 여 년 전, 고려 의종 때 일어난 무신의 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명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적 동정심을 줄 여지가 거기엔 있었다.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대장군인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운 일, 또 하급 문신 한뢰가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린 사건이 도화선이 되지 않았나.

장수는 품위와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 있다. 나라의 녹을 먹고 국가 보위에 애쓰다가 퇴역한 그들의 억지 선전 선동은 품위와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밖에 안 된다. 가짜 뉴스까지 동원해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범인(凡人)들도 피해야 할 일이다. 이성 찾기를 당부한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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