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시사칼럼 - 이재용의 '감'과 김병준의 '감'

김병희(시사평론가)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방북했다. 이건희 회장이 북한을 다녀온 적이 없으므로, 삼성그룹 오너가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2박3일이라는 넉넉한 일정이었다.

자유한국당의 가장 든든한 지원세력은 역시 재벌이다. TK를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당이 여느 지역정당처럼 힘없이 쓰러지지 않는 것은 재벌에 의해 보수언론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벌에 유리한 정책을 완강히 고수하며 상부상조한다.

한국당의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청와대의 특별수행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지만, 재벌들은 여러 가지 얽힌 일들이 많아서 청와대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북측에서 요청이 있었건, 청와대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했던 간에, 실질적인 투자 의사결정권이 있는 총수의 방문이 요청된 이상 기업의 최고경영자 입장에서 이를 거절할 명분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 직간접적으로 요청하는 방문을 초기에 명분 없이 거절했다가는 이후에 혹시 있을지 모를 막대한 투자 기회를 경쟁 대기업집단에 몽땅 빼앗길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지기반이 없는 김병준이나, 보수의 정통이 아닌 김성태는 이번기회에 사실 같이 방북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 중심으로 진행되는 행사에 대기업 총수라는 직책에 비해 다소 소홀한 대접을 받을 것이 뻔한 이들과 함께, 2박3일 넉넉히 따로 공감대를 형성했어도 좋을 뻔 했다. 하지만 김병준과 김성태는 이 기회를 놓쳤다.

추후에 그 재벌들이 김정은과 그 측근들을 직접 만나, 중국과 미국보다도 먼저, 북한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투자편의를 구두로라도 약속받게 될지도 모른다. 재벌들이 예상하는 수익이 대한민국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보다 월등히 많고, 남북정상 모두 이들 재벌들의 지속적인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 된다면, 재벌들에게는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도 있는 일인 것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재판은 재판이고 일은 일이다’라고 말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큰 명분 앞에 국민들께 양해를 구하고 이재용을 편하게 해 줄 수도 있는 문제이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라고 하는 것은, 비판을 받더라도 더 큰 명분이 있으면 책임지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재벌이 서로를 장기적으로 필요로 하는 상황이 조성되면, 자유한국당의 입지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이번 정상회담 후, 김정은이 재벌들의 편안하고 빈번한 방문을 당부하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라인과 재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머리를 맞대는 일이 일어난다면, 자유한국당은 무엇을 먹고 살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이재용은 평양과 백두산을 다른 총수들과 함께 둘러보고 왔다. 북한은 4개의 대기업집단이 나누기에도 너무 큰 투자처이다. 이미 포화상태의 국내시장처럼 대기업집단끼리 다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업가에게는 일반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감’이라는 게 있다. 그 감은 반도체, 휴대폰 사업 등과 같이 강력한 실천으로 옮겨지면서 한국경제를 이끌어왔다. 이재용이 이번에 어떤 감을 잡고 왔는지는, 중앙일보의 변화하고 있는 논설 방향이나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의 최근 기고문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병준은 정치인으로서의 감이 없는 듯하다. 이 감이 없으면, 깜이 안 되는 것이다. 깜이 안 되는 사람을 앞세워 자리를 보전하려 하는 한국당 의원들과 전원책이라는 또 다른 방송인을 앞세워 위기를 모면하려는 김병준의 감은 여전히 공허하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대선후보의 반열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성공한 정치인이 없음은 김병준 본인도 너무 잘 알 것이다.

김병희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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