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시사평론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될 때만 해도, 미국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진 지식인들이 많았었다. 오바마의 퇴임 당시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의, 그것도 막말과 인기영합주의로 비판받던 트럼프가 당선되는 상황을 정치전문가들 조차 그냥 지켜보아야 했으니 말이다. 

미국 국민들의 판단력이 경기불황, 정치혐오감, 언론 등의 여러 가지 사유로 흐려진 것이 아닌가 하면서, 중우정치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민주주의란 드러나 있는 유권자의 의사도 반영하지만, 잠재되어 있는 국민들의 욕망도 무섭도록 정확하게 표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국민들이 트럼프를 이용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최근 미중 무역 분쟁이나 미북 비핵화 협상을 통해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원만한 리더십도 그 가치가 크지만, 가만히 앉아서 세계의 패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그들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손을 써야 될 시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해찬, 손학규, 정동영이 돌아왔다.  지금이야 올드보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정치혁신을 가로막는 부정적 요인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그들은 한 때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유력한 대선주자급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2020년 총선 공천권을 쥔 힘 있는 당대표로 돌아온 것이다. 

당원들과 국민들은 왜 이들을 소환한 것일까? 나는 이들에게서 국민들 저변에 잠재되어 있는 오랜 정치적 욕구를 본다. 이 정도 급에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 개편. 

국민들의 지지율에 비해 과하게 의석을 차지하는 거대 양당에 의해 민의가 왜곡되는 현상은, 오랫동안 그 문제점을 지적받아 왔지만,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이므로, 근본적으로 스스로 고쳐질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것은 고양이 목에 누군가 방울을 다는 수준이 아니라, 호랑이가 스스로 자기 목에 방울을 걸도록 설득해야 하는 수준의 문제였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조차도, 굳이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주석과 함께, 선거제도가 개편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비쳤으니 말이다. 

아직 자유한국당이 비대위 체제이긴 하지만,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가 결심을 하고, 자유한국당을 압박한다면, 이번에야 말로 독일 등 유럽선진국 수준의 선거제도 개편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여소야대의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 스스로도 기득권을 내려놓는 큰 결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국회 특활비 문제에서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취해왔던, 내로남불식 애매한 입장을 볼 때, 사실 기대가 크지는 않지만, 이해찬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내심 생각해 본다. 

국민들이 올드보이들을 동시에 소환한 까닭은 그들의 시대적 소명을 이번에 꼭 완수하라는 준엄한 명령일 것이다. 공천권 가지고, 자기사람 심어서 다음 대통령 도전하라는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다들 큰 정치인인 만큼 국민들의 신의를 배반하지 않는 통 큰 정치를 하길 바란다. 

김병희  gcilbo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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