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시평 - 광복절 or 건국절?

이명재(본 신문 발행인)

1945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제 36년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1948년 8월 15일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일이다. 통일 정부가 수립되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당시 김구 김규식 등 지도자들은 남북의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남북이 UN(국제연합) 회원국으로 동시에 가입되어 국제 사회로부터 각각 나라로 인정받고 있다.

영구 분단의 우려 속에서 요즘 통일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의 빛이 보여 고맙다. 전 정권에서 절망으로만 비치던 남북의 평화 통일 기운이 꿈틀대고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이 바뀜으로서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한반도 해빙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오는 9월 또 한 번의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부풀어 오르는 기대가 적지 않다.

이런 중에도 일부 극우주의자들(보수언론,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 일부 정치인들)이 8월 15일 건국절을 주장하여 사고(思考)를 흐려놓고 있다. 근거와 명분이 미약하다고 해도 진영논리에 갇혀 주당하다 보면 좋지 않은 영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8.15 건국절을 주장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사람이 태어난 생일이 있듯이 국가도 생일 즉 건국한 날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이 바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꼼수가 도사리고 있다. 1948년 8월 15일 이전의 역사에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5천 여 년 전 단군이 개국한 날을 개천절로 지키고 있다.

이것은 또한 헌법 전문(前文)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되어 있다. (임시)정부의 건립을 명문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헌법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보수언론과 일부 뉴라이트 학자들을 중심으로 1948년 8.15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은 3.1운동 이후에 건립된 임시정부는 국가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 1851~1911)가 주장한 국가 성립의 3요소, 즉 국민 영토 주권은 많은 설(說) 중의 하나일 뿐 절대적이 아니다. 독일의 법학자인 옐리네크도 제국주의 환경의 지배하에 놓여 있는 학자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안병직 양동안 이영훈을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오류이다. 이들은 조선 왕조를 봉건주의로 보고 바로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일본 식민 지배를 거쳐 해방 후 자본주의의 길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발전에 일제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일본을 영원히 적(敵)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과거 36년간의 간악한 지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이들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국부(國父)로 받든다.

이건 이승만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회사, 대통령 취임 선서 등에서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썼다. 1948년 9월 1일 첫 관보(官報)도 '대한민국 30년'을 사용했다.

1919년 임시정부 건립을 대한민국의 출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승만 본인이 1948년에 나라가 세워졌다(建國)고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승만이 임정 계승과 재건을 강조했을 뿐이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일을 '건국절'로 인식하고 부르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중요한 건 이게 학문적 주장이 아니라 정치적 주장이라는 게 문제다. 역사 왜곡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의 암흑사를 제거해 버리고 이승만 독재를 정당하다고 본다. 이것뿐 아니라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개발독재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 아류(亞流)인 이명박이 8.15 건국절에 불을 당겼고, 박근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서 건국절 논란에 쐬기를 박으려 했다. 권력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이 자충수가 되어 그는 탄핵을 당하는 불운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오늘은 광복 73주년이 되는 날이다. 건국 70년이 되는 날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곡학아세(曲學阿世)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