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同學)은 같은 분야의 학문을 하는 친구들을 일컫는다. 김형찬 황의준 최상근 그리고 나는 호서대학교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사이다. 연도는 달리 하지만 그 대학에서 역사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거기에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다.

오늘(8월 14일) 위의 네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인천에 모였다. 세계로교회 김형찬 목사가 초청하는 형식이었다. 두 달 전쯤 황의준 목사가 군산으로 우리를 초청하여 그곳의 근대 문화유산을 탐방하고 대접을 받았는데, 그것에 대한 답방 형식이다.

오늘 인천 방문에 의미를 더한 것은 사모님들이 함께 했다는 점이다. 남편의 목회를 도우랴 공부시켜 박사 만들랴 아이들 키우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한 사모님들이다. 황의준 박사 사모님은 직장 휴가원을 내고 참석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동학 네 쌍이 인천 세계로교회에 모여 그 지역 근대문화 답사에 나섰다(오른쪽부터 황의준 박사 부부, 김형찬 박사 부부, 필자 부부, 최상근 박사 부부)

11시가 조금 넘어 세계로교회에 도착했다. 당회장실에서 잠깐 환담을 나눈 뒤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교회 근처에 있는 아이즈빌아울렛 2층에 있는 PRIME Maris 부페 식당이 우리의 시장기를 해결해 줄 음식점이다. 고급 음식백화점이라 했다.

육해공(陸海空)의 먹거리로 가득하다. 나는 '해(海)'에 초점을 맞춰 하나하나 처리해 나갔다. 김형찬 목사는 이곳이 인천에서 고급 부페에 속하는데, 식사 시간 즈음엔 손님이 꽤 많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주차할 공간을 찾느라 애를 먹은 조금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두런두런 얘기하며 여유 부리고 음식들을 들었다.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오늘 우리가 둘러 볼 인천개항박물관 근처에 유명한 커피숍이 있다고 했다. 30분 가까이 간 것 같다. 카페 나인티플러스가 있었다. 입추(立秋)가 지났는데도 낮 기온은 40도를 넘보고 있었다.

친절하고 커피 맛 좋고 시원하면 그만 아닌가. 오후 3시 30분 우리는 인천의 근대 문화유산 등정 길에 나섰다. 사모님들은 커피숍에 남는다고 했다. 그러니까 남정네 네 사람이 오늘의 등정대원이 되는 셈이다. 우린 여러 사정상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모처럼 먼 길 나들이를 한 사모님들이 더 즐거워했다. 황의준 박사 사모님(맨 오른쪽)은 휴가원을 내고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일본식과 중국식 문화유적을 꼼꼼하게 살피려면 3,4일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중 김형찬 목사가 고른 전시관(박물관)이 네 곳-대불호텔전시관, 생활사전시관,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이다. 이곳들은 우리를 시간에 태워 1세기 전으로 옮겨 놓았다.

대불호텔전시관은 중구 생활사전시관의 제1관에 해당된다. '대불(大佛)'은 큰 부처란 뜻으로 1885년 제물포를 통해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묵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의 일기에 똑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서양식 호텔 중 하나이다. 옛 모습을 재현해 관광객을 맞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꾸며놓은 객실은 오늘날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사벨라 비숍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이 호텔을 불결하기 짝이 없다고 적고 있는 것은 푸른 눈의 소산일 것이다.

대불호텔의 당시 객실 모습. 오늘날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제2관에 해당하는 생활사전시관은 1960~1970년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박정희의 유신시대와 겹쳐있는 개발독재의 시대에 해당한다. 특히 2층의 백항아리집(선술집), 극장, 다방 등은 나의 어린 시절을 끄집어내 주어서 감회에 젖게 했다.

당시의 기차 객실을 재현해 놓은 의자에 앉아 우리 네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 들린 곳이 인천개항박물관, 마침 제9회 기획전이 열려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기획전 이름이 'since 1899 미리 보는 경인철도 120년'으로 되어 있었다. 경인선은 우리나라 철도의 효시(嚆矢)이다. 교통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사건이 1899년에 일어났다.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걸어가면 꼬박 하룻길이었는데, 1시간 40분 만에 갈 수 있었으니... . 전시되어 있는 일제시기 승차권에는 이런 글자들인 인쇄되어 있었다. "仁川▸ 通用發賣日共  日,  等 10錢"  인천에서 출발해서 도착역 이름과 날짜(日), 객차 등실(等)은 역에서 직접 기입해 준 것 같다.

인천개항장박물관은 일본 제1국립은행 부산지점 인천출장소로 출발한 전형적인 은행 건물이다. 1970년대까지 조선은행 한국은행의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1980년에 조달청 인천사무소로, 1996년엔 인천지법 등기소로 그리고 2010년에 인천개항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니 기구한 운명을 가진 건축물이라 하겠다. 당시 은행으로 사용되었을 창문, 금고, 기둥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옛 체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당시 제물포의 일본인 거리.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한 항구여서 문화 수준이 꽤 높았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도 은행 용도로 지은 건물이다. 일본 제18국립은행의 인천지점으로 시작했으니까. 은행 이름을 제1, 제18 등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하고 있는 것에서도 일본 사람들을 '경제적 동물'로 일컫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일제강점기 때는 수치를 즐겨 따졌다.

이 전시관은 모두 네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다. 제1전시실-개항 이후의 인천항 모습, 제2전시실-대한제국 때부터 현재까지 근대 문물과 관련된 영상 및 사진, 제3전시실-현존하는 건축물과 소실된 건축물의 모형, 제4전시실-제18은행 건립 당시 금고로 사용되었던 공간으로 은행 거리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고 있다.

중국의 근대 유적, 즉 한중문화관과 화교역사관, 짜장면박물관 등지는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몇 가지 느낌을 말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역사에 대한 중요성이다. 역사는 정부(正否)의 총체적 구성이 되어야 한다. 잘못된 역사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란 얘기다.

당시 인천 거류 외국인들이 사용하던 커피 잔.

지금은 경제에 더해 문화에도 정책의 비중을 두어야 한다. 문화는 정신의 영역에 속한다. 물질이 아무리 풍성하더라도 그 안에 정신, 즉 문화가 빈약하다면 바른 삶을 향유한다고 할 수 없다. 배부른 돼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지도자는 역사와 문화를 중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각 전시관에 입장할 때마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큰 액수가 아니다. 잘 하는 일이다. 문화를 즐기며 삶을 풍요롭게 엮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선진국 국민들은 문화 향유에 드는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도 이런 생각이 확산되면 좋겠다.

광복절 하루 전날,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훑게 된 것도 귀한 경험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것밖에 못했을까, 오늘의 관점에서 보는 과거의 현상들이 돋보기 안의 사물처럼 눈에 잡혔다. 영국의 역사가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역사를 비판안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바쁜 생활의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함께 한 김형찬 황의준 최상근 삼박(三博)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특히 인천의 터줏대감 김형찬 박사는 점심식사 등 인천기행에 든 경비 일체를 부담하며 선행(善行)의 본을 보였다. 오랜만에 판에 박힌 생활을 탈피하여 자유를 만끽한 사모님들을 응원한다.

발행인  lmj228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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